노래책시렁 73《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서정학문학과지성사2017.5.30. 젊다는 이하고 늙다는 이가 쓴 시를 문득 돌아보면, 젊다는 이는 시마다 영어를 한두 마디씩 어떻게든 섞는구나 싶고, 늙다는 이는 시마다 한자를 드러내어 요리조리 섞는구나 싶습니다. 젊다는 이는 영어를 섞으며 가볍다거나 틀을 깨겠다는 다짐으로 보인다면, 늙다는 이는 한자를 섞으며 묵직하다거나 틀을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쪽을 보든 저쪽을 보든 글치레에 너무 얽매인 나머지 정작 시라고 하는 노래는 잘 안 보이기 일쑤입니다.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를 읽으며 내내 영어에 치입니다. 달리 본다면, 이 시집에 실린 영어에 치인다기보다, 우리 삶터가 이런 흐름이니 시인도 이런 흐름을 고스란히 담는구나 싶어요. 늙다는 이는 예전에 예전 삶터 흐름대로 한자를 신나게 드러내어 시를 썼지요. 다시 말해서, 삶터가 아늑하거나 따스하거나 사랑스럽다면, 시를 쓰는 이들 글결도 달라지겠지요. 다만 삶터가 이러거나 저러거나 시라고 하는 글을 쓰는 이는 삶터 흐름에만 따르거나 휩쓸리기보다는 스스로 새롭게 흐름을 지을 줄 안다면 반갑겠습니다. 남들이 다 그러하니까 시도 그러려니 하고 따르는 발걸음이 아니라, 서로 즐거이 부를 노래를 스스로 새로 일구어 가만히 펴는 손길이 될 노릇이지 싶습니다. ㅅㄴㄹ물을 붓고 3분만 기다리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떨리는 손으로 봉지를 뜯었다. 날은 추워지고 또 몸은 젖었으니 그것밖에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인스턴트 사랑주스/17쪽)스무 개가 겨우 천 원이라는 상상 초월 대박 가격에 모든 사람들은 뛰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61쪽)(숲노래/최종규)
상상과 유희를 극대화한 자리, 프랑스
사소함을 공통 감각으로 확장하는 경험
서정학의 두번째 시집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가 출간되었다. 1998년 첫 시집 모험의 왕과 코코넛의 귀족들 을 낸 지 19년 만이다. 시인은 1995년 군 복무 중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은신처」 등 다섯 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데뷔 당시 첨단 문명이 낳은 새 문화들에 침윤된 시인은 문화 중독자답게 바로 그것들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짓는다 ( 문학과사회 편집동인)는 평을 들었으며, 이후 함기석, 이수명, 이철성 등과 함께 억압적 질서와 형식을 파기 하는 신세대 시인 (문학평론가 정끝별)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이후 시인은 꾸준히 시를 쓰는 동시에 서촌 골목에 나눔 가능한 예술적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세컨드 뮤지엄’을 열어 소규모 전시나 워크숍 등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디렉터로도 활동해왔다. 이번 시집에는 그가 지난 시간 동안 써온 시들 중 고심 끝에 고른 서른네 편이 고르게 묶였다. 2017년에 쓴 시들이 담긴 [17 흔적] 장부터 1999년에 쓴 시들이 모인 [99 반복] 장까지 역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시집은 예민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장들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동시에, 시의 형식이 가진 느슨함을 최대한으로 끌고 나가 그 넓어진 공간에서 충만한 유희를 선보인다.
시인의 말
17 흔적
제일 앞자리엔 채리가 앉는다/초현실적인 기계장치와 푸른 나무들/중요하지 않은 뭔가의 부국장, 그리고 그의 청춘./인스턴트 사랑주스
06 상자
대답 없는 레베카/종이상자/뜨거운 사랑/종이상자 선반/아드레날린/종이상자 연구소/종이상자 공장/비밀
04 연맹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인천 미식가 클럽/인천개포구연수동국제사탕조합대표자회의제7차대회전야제기념식장/선착장/주체 자유민주 국제연맹 최북단 간이사무소 연락지국 1525호/도파민/써라!/인천 세관 도착 환영회/컴포지션 넘버포/연애드라마
00 프랑스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앗, 프랑스/아앗, 프랑스/다시, 프랑스/그래도, 프랑스
99 반복
너는 생필품/완벽한 컬렉션 (가)/코끼리 하이힐/풀사이드/프랭클린 박사의 하루/비 오는 유행가/제법,
해설 | 중력의 자장을 벗어난 오늘의 시?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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