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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안도현의 시작법,『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토란 잎에 구르는 물방울처럼물고기비늘 반짝이는 건밤새 바다에 떨어진 별빛배부르게 먹었기 때문일 거야 - 이재무, 「해돋이」 부분 - 시인의 동심은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물고기 비늘이 반짝이는 건 물고기가 바다에 떨어진 별빛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고. (48쪽) 백 대쯤엉덩이를 얻어맞은 암소가수렁논을 갈다 말고 우뚝 서서 파리를 쫒는 척, 긴 꼬리로얻어터진 데를 비비다가불현듯 고개를 꺾어제 젖은 목주름을 보여주고는저를 후려 팬 노인의 골진 이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그 긴 속눈썹 속에젖은 해가 두 덩이오래도록 식식거리는 저물녘의 수렁논- 이정록, 「주름살 사이의 젖은 그늘」 전문- 이 시는 시적 대상을 오래 들여다본 결과물이다. 논을 갈던 암소가 고개를 꺾을 때 생기는 목주름과 노인의 이마 주름의 대비, 소의 굵은 눈망울과 젖은 해 두 덩이의 비유가 더없이 적절하다. 이러한 관찰이 시적 기교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말 없는 짐승과 인간을 한 식구로 동일화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55쪽) 달빛 밟고 머나먼 길 오시리두 손 합쳐 세 번 절하면 돌아오시리어머닌 우시어밤새 우시어하아얀 박꽃 속에 이슬이 두어 방울 - 이용악 「달 있는 제사」 - 이 짧은 시에 이야기가 들어 있을까? 있다 어머니의 슬픔은 이슬이 두어 방울에 집약되어 있다. 두어 방울의 이슬은 이슬의 양이나 슬픔의 무게가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반어다.(181쪽) 슬픔을 안간힘으로 이겨내고 있는 표현이다. 왜 사는가왜 사는가..외상값. - 황인숙의 「삶」 전문 - 외상값의 의미는 부모에 대한 빚, 이웃에 대한 빛, 연인에 대한 빚 등....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그게 나 자신일수도 있고 그 빚을 갚아야 하기에(182쪽)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속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 나희덕 「허공 한줌」 전문 - 죽음으로 아기를 살리는 모성도 감동이지만 삶의 어떤 집착으로부터 풀려나는 인간의 모습이 시를 읽는 독자까지도 시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여 해방시킨다. 시인의 뛰어난 소재 장악력이 감동을 낳았다. (184쪽) 나도 땅을 가지고 싶다.내가 좋아하는 민병하 선생님도수원 근처에 오천 평이나 가졌는데... 싼 땅이라도 좋으니한 평이라도 땅을 가지고 싶다.땅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좋으랴.... 땅을 가지고 싶지만,돈이 있어야 한다.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땅을 가지고 있으면,초목을 가꾸고,꽃을 심겠다. - 천상병 「땅」 전문 - 어떤 이들은 도대체 이런 게 무슨 시인가, 되묻고 싶을 것이다. 이 시에는 비유도 없고 시적 발견도 없다고 할 것이다.시인은 땅을 갖고 싶고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 욕망은 초목을 가꾸고 꽃을 심겠다는 꿈이다. 바로 무욕의 욕망이다. 시에서 억지로 은유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은유를 잘못 배우면 말을 요리조리 비틀게 된다. (199쪽) 안도현은 이런 비틀고 교묘한 표현들을 ‘비유의 덧칠’이라고 지적한다. 나주 들판에서정말 소가 웃더라니까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마침 꽃이 핀 거야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그것만이 아니라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그래서,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하마터면,소가 중심을 잃고쓰러질 뻔한 것이지 - 윤희상의 「소를 웃긴 꽃」 - 특정한 개념과 틀에 갇히지 않은 상상력, 엉뚱함의 힘.(205쪽) 무논에 써레가 지나간 다음 흙물이 제 몸을 가라앉히는 동안그는 한 생각이 일었다 사라지는 풍경을 본다한 획 필체로 우레와 침묵 사이에 그는 있다 - 문태준, 「황새의 멈추어진 발걸음」 전문- 표면적으로는 써레질이 끝난 뒤 흙물이 가라앉는 모습이 시의 소재가 되고 있다. 흙물이 그저 가라앉는 게 아니라 ‘제 몸을 가라앉히는 동안’이라고 말하는 것도 범상하지 않지만, 그것을 ‘생각이 일었다 사라지는 풍경’으로 확장하는 상상력은 놀랍다. 그리하여 ‘우레와 침묵 사이에’ 있는 존재의 고독과 무상함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황새는 단순한 조류가 아니라 드높은 정신주의의 한 표상으로 읽힌다. ‘써레’와 ‘우레’라는 유사한 음성기호가 동일한 의미로 나란히 서 있는 언어유희도 볼 만하다. (247쪽)
시는 어떻게 태어나 사는가?
안도현 시인의 ‘시와 연애하는 법’

2008년, 「시와 연애하는 법」이라는 타이틀로 6개월 동안 「한겨레」에 연재했던 원고를 대폭 손질하고, 내용을 보강해 묶은 이 책은 ‘좋은 시는 어떻게 태어나는지’, ‘좋은 시는 어떻게 쓰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시작법 책인 동시에 오랜 세월 시마詩魔와 동숙해온 시인 자신의 시적 사유의 고갱이들이 담겨 있다. ‘좋은 시를 어떻게 쓸 수 있는지’에 대한 비법이 수능시험 답안지처럼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가 무엇인지 를 말하기 보다는 시적인 것 을 탐색하는데 주력한다는 자신의 이야기, 상투적인 것을 피하라는 충고, 한 편의 시가 탄생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 등을 통해 좋은 시가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관해 이야기 한다.

또한 시인은 고등학교 시절에 쓴 시를 부끄러이 공개하면서, 자신이 골랐던 시어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기도 하고, 급기야 화장실에서 떠오른 시상 메모가 어떻게 한 편의 시로 탄생하는지 그 과정과 흔적을 소상히 서술하면서, 안도현 시인과 시에 대한 뒷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마련한다. 그리고 책 속에 좋은 시의 증표로 삼을 만한 100여 편의 시를 소개하며, 이 시들이 왜 좋은 시인지에 대한 시인의 도움말이 시와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자연스럽게 마련하고 있다.

좋은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고 시와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시라는 세계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 답답해했던 사람들,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에 대한 안목을 기르고 싶었던 사람들, 어떤 시인, 어떤 시집을 읽으면 좋을지 막막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이 맞춤한 시 안내서로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글 - 영혼의 생산자로서 시인이 된다는 것

1.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술·연애·시집 / 소리로 세상 읽기
2. 재능을 믿지 말고 자신의 열정을 믿어라 타고난 시인은 없다 / 몰입의 기술
3. 시마(詩魔)와 동숙할 준비를 하라 똥하고 친해져야 한다 / 시적인 순간
4.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는 결별하라 상투성의 그물 / 세계와의 불화 / 동심론
5.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라 본 것, 가까운 것, 작은 것, 하찮은 것 /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6. 지독히 짝사랑하는 시인을 구하라 필사의 즐거움 / 사랑하면 길이 보인다
7. 부처와 예수와 부모와 아내를 죽여라 시가 서 있어야 할 자리 / 시인이 서 있어야 할 자리 / 사랑의 표현
8.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리고 게을러져라 발효와 숙성 /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시간
9. 감정을 쏟아 붓지 말고 감정을 묘사하라 함축인가, 비유인가 / 고백·감상·현학 / 묘사의 힘
10. 제발 삼겹살 좀 뒤집어라 묘사는 관찰로부터 / 대상과의 거리 두기
11. 체험을 재구성하라 시적 허구 / 화자의 뒤에 숨은 시인
12. 관념적인 한자어를 척결하라 일상어와 시어 / 진부한 말이 진부한 생각을 만든다
13. 형용사를 멀리 하고 동사를 가까이 하라 한심한 언어 / 동사의 역동성과 종결어미의 변화
14. 제목은 시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음식점 간판과 음식의 맛 / 제목을 붙이는 방식 / 암시하되 언뜻 비치게
15. 행과 연을 매우 특별하게 모셔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 행갈이의 힘 / 산문시와 짧은 시 / 문장의 빛깔과 무늬
16. 창조를 위해 모방하는 법부터 익혀라 통변의 기술 / 모방할 줄 모르는 바보
17. 시 한 편에 이야기 하나를 앉혀라 서정과 서사의 결합 / 시에 숨어 있는 기승전결
18.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진정성이냐, 기술이냐 / 온몸의 시학
19. 단순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놀아라 비유의 덧칠 / 소를 들어올린 꽃
20. 없는 것을 발명하지 말고 있는 것을 발견하라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은 것들 / 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
21. 퇴고를 끊임없이 즐겨라 문을 밀까, 두드릴까 / 참담한 기쁨을 느낄 때까지 / 소월도 3년 동안 고쳤다
22.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화장실에서의 메모 / 쩨쩨하고 치사한 시쓰기
23. 시를 쓰지 말고 시적인 것을 써라
새로운 언어, 새로운 인식, 새로운 감동 / 시애틀 추장의 연설 / 시의 네 가지 높은 경지
24. 개념적인 언어를 해체하라 상상력을 풀무질하는 시인 / 시적 상상력과 창의성
25. 경이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시인으로서의 고뇌 / 몇 가지의 시작법
26. 시를 완성했거든 시로부터 떠나라 시를 간섭하지 않는 시인 / 침묵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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