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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먹는 절음식


요즘 식당에서 밥을 시키면, 묵은 김치 대신 입맛을 돋워주는 봄나물들이 종종 상에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대개 날 것을 깨끗이 다듬어 갖은 양념을 해 조물조물 무친 것. 젓가락을 들어 입에 넣으면 어느새 입안이 풀 향기로 가득해진다. 그리고 그 맛은 영락없이 봄을 느끼게 해 준다. 계절은 그렇게 식탁 위에서부터 찾아오는 것 같다. 고춧가루와 쌀뜨물을 넣어 만든 여주 신륵사의 돌나물 김치도 마찬가지다. 돌나물 김치의 국물에서 맛볼 수 있는 것은 상큼한 햇살! 바위틈에 핀 노란 꽃, 파릇파릇한 이파리가 햇빛을 담뿍 먹고 자랐음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돌나물말고도 에는 씀바귀 무침, 진달래 전 등 사시사철 피는 들풀들과 그 들풀로 만들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은 대형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의 요리코너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오늘 저녁엔 뭘 먹지 , 반찬 365일 등과 같은 무크지는 아니다. 전국 유명한 절의 음식을 꼼꼼히 채록해 공개했기 때문. 그 동안 일반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사찰음식에 대해 다뤘다. 현재 인사동에서 사찰음식점을 경영하는 저자 김연식 씨는 실제 출가해 절에서 음식을 만들었던 이력을 갖고 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천 6백년 전. 그러나 그 동안 사찰음식이 발전할 수 있을만한 기회나 통로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오욕(五慾) 중에 식욕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 맛있게 먹는 것이 수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기록을 남기거나 비법을 전수하는 일이 어려웠던 것이다. 최근 불어닥친 채식열풍 때문일까.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던 간에 사찰음식은 채식열풍의 기류를 타고 인기상승 중이다. 만들기 쉽고 먹기 편한 인스턴트 식품, 기름기 많은 육류 위주의 식단 등은 비만이나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한때 경제적인 부의 상징이기도 했던 고기 는 그 영광을 잃은 지 오래. 대세는 채식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사찰음식은 이러한 현대인의 요구와 맞아 떨어졌다. 수행하는 자가 욕심을 버려야 하듯 사찰음식은 먹어서 몸과 마음이 더욱 가벼워지는 음식이다. 첨가물은 최대한 배제하고 주재료의 맛을 살렸다. 육류를 쓰지 않을 뿐 아니라 파, 마늘, 달래 등 자극적인 채소도 넣지 않는다. 날 것을 그대로 먹는 강회나 무침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식물성 기름으로 부친 전이나 튀김 등을 더하면 웬만한 구색을 갖춘 사찰음식 한 상이 짠~ 하고 차려진다. 그 중, 무와 배추, 소금이 재료의 전부인 한해물김치 는 최소한 2년이 지나야 제 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한 해 전 가을에 무와 배추를 소금에 간해서 밀봉해 항아리에 넣어 묵힌 다음, 이듬해 여름에 꺼내 먹는다. 그냥 먹는 것이 아니다. 우선 꺼낸 무와 배추를 나박썰기 한다. 그 후, 먹기 한 두시간 전에 찬물에 담궈 적당히 간이 배어나게 해야한다. 그렇게 하면 깊고도 담백한 맛이 난단다. 아마도 그것은 인고의 세월이 주는 맛이 아닐까 싶다. 땅 속 깊은 곳에 오랜 시간동안 절여진 무와 배추. 본래의 성질은 어디로 갔는지, 아삭하게 씹히는 것은 아픔 후의 무엇이다. 성숙이란 단어에 맛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130여 가지 절 음식만이 아니다. 수원 용주사, 합천 해인사, 구례 화엄사 등 일곱 군데의 사찰을 풍경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절은 역사 속에서 화려했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석탑, 암자, 대나무 숲 등이 절 음식과 어우러져 일상의 모습 그대로를 나타내고 있다. 씀바귀, 쑥부쟁이, 산동백 등 절 근처 산에 피어나는 들풀들도 사진으로 고스란히 담아냈다. 마치 전국 각지에 피어있는 들꽃들에 관한 식물도감 같기도 하다. 특히 상사화는 그 내력이 눈길을 끈다. 꽃은 잎을 볼 수 없고, 잎은 꽃을 볼 수 없다 해서 이름 붙여진 꽃. 무성한 잎이 먼저 자라 말라서 형체가 없어지면 그 다음에 상사화가 핀다. 그것이 거기 있었는지조차 깜빡 잊을 때쯤에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다른 어떤 책을 찾아보기 워밍업 내지는 관문과 같다. 책을 읽고 난 몇몇은 사찰음식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나와 있는 것을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몇몇은 우리나라 절에 대해, 또 다른 이는 이름 없는 풀꽃들에 관한 책을 찾아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음식과 관련된 책을 더 찾게 될 것 같다. 이제와 고백하건데, 솔직히 나는 음식이나 그것을 만드는 요리법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이 너무 고단해 보여서였을까. 밥 짓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면 어머니 세대의 힘듦이 고스란히 필자의 몫이 되어버릴 것아 불안했다. 시대는 변했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가정 밖의 사회에서 인정받는 일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나를 식탁 위의 장님으로 만들었다. 어떤 캔버스 위에 어떤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른 채 그림 앞에서 고개를 끄떡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필자 뿐만은 아닐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 새로 생긴 레스토랑에서 새로운 퓨전요리를 맛보는 것이 문화생활이라고 여겼던 적은 없었는지. 세계인의 입맛에 맛는 국적불명의 음식. 그것이 경쟁력이며, 음식문화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의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자연과 문화와 사람이 어우러진 것이 진정한 음식 이라고 말한다. 소금을 얼마큼 넣어야 하는지, 미나리를 어떻게 다듬어야 되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연 환경에 맞는 먹거리를 직접 기르고, 수확한 후, 자신의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이 식생활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의 음식문화가 그대로 이어져 나갔을 때, 과연 어떤 미래가 우리에게 찾아올지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햇살로 익힌 간장 맛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기 전, 절대 맞닥뜨려서는 안될 암울한 미래의 모습이다. 그래서 사찰음식은 이렇게나마 회초리를 든 것 같다. 자꾸 다른 길로 게걸음을 치고 있는 우리의 식문화, 그 꼬리라도 붙들어 보기 위해서 말이다.
인사동의 전통사찰음식점 대표로 있는 저자가 소개하는 사찰음식. 수원 용주사의 국화전과 두부소박이, 여주 신륵사의 연잎밥과 국화송편, 합천 해인사의 가지지짐과 고수무침 등 약 35년 동안 전국의 사찰을 돌면서 채록하고 노스님들의 구전을 기록하여 재현한 여러 가지 사찰음식을 사찰 주변의 풍광과 함께 소개했다.

1. 머리말
2. 추천사
법장스님 / 이영수 / 유태종 / 안토니 안선재 / 마크 봄 필드
3. 수원 용주사
4. 여주 신륵사
5. 합천 해인사
6. 구례 화엄사
7. 여수 향일암(영구암)
8. 여수 흥국사
9. 해남 대흥사(대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