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 으례 아빠가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처럼. 반드시 그래야 하는. 책을 읽고 소감을 쓰면서 내 이야기를 덧붙이는게 우습지만 나는 21살에 펄펄 날다 목이 부러져 장애인이 되었다. 이래저래 좌절에 빠져 허우적 댈 시간도 없이 나는 미래라는 녀석을 설계하느라 내 삶에 몰두했다. 몸이 너무 뻣뻣해서 약이 없이는 활동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제대로 움직여 주지않는 몸뚱이를 끌고 다니며 직업을 찾으려 애썼다. 1990년에 다치고 1992년에 미래를 설계한답시고 컴퓨터라는걸 배우고 1997년에 대학을어렵사리 졸업을 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 몇 백번의 면접을 치루다 지칠즈음 "언제부터 일 할래요?"라는 황당한 면접을 치르고 디지털애니메이션 제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장애가 있는 몸으로 취업이란걸 했더니 강하게만 느껴지던 모친이 눈물을 펑펑 쏟으시며 좋아라 하셨다. 그리고 나는 너무 좋아, 뭔가를 미친듯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 퇴근하고 집에갔다왔다 하는시간이 아까워 회사에서 줄 곧 버텼다. 그랬더니 모친께서 회사에 쫒아 오셔 사장놈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셨더랬다. 장애인을 데리고 노동력을착취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미친듯이 일에 매달렸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나이까지 많이 먹으면 시집 올 여자가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사나흘을 밤샘 작업을 하면서도 이곳저곳 장애인 단체에 가입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조그만 차를 몰고 다녔으니 몸으로 떼우는 봉사는 어려워도 차량 봉사로 자원봉사자들과 가까워질 요량이었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생기고 나는 더 열심히 쫒아다녔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무모할 정도로 다녔다. 사흘을 철야하고 나서 멍해진 정신을 붙들고 정동진 해돋이 차량 봉사를 쫒아 다녔으니 말이다. 하여간 그때는 서른 살을 넘기면 결혼을 못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 미친 짓을 몇달을 하고 다니다가 엉뚱하게 같은 사무실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러고 다니는 내가 안쓰러웠다고 한다. 아내는 예뻤고 심성도 더할 나위없이 착했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여서 다짜고짜 같이 살면 어떠냐고 들이댔다. 몸이 불편한 나를 뻔히 아내의 집에서 좋아하지 않을꺼라는걸 알았지만 내겐 놓칠 수 없는 찬스였다. 헌데 아내의 대답은 이미 자신이 집에 손을 써놨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했다. 예쁜 얼굴과 착한 심성에 장애도 없는 여자와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여자와 산다. 80년만 같이 살기로 하고.
결혼하고 자연스레 아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결혼한지 2년만에 딸아이가 태어났다. 아내는 임신 중에 입덧이 심해 갖은 고생을 했다. 덩달아 나 역시. 아내는 모든 먹으면 토했다. 밥도 분식도 심지어 물도. 어느 날 보름달이라는 빵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퇴근 길에 슈퍼며 편의점이며 뒤졌지만 보름달은 없고 둥근달만 있다. 그게 그거지 싶어 사다 주었는데 한 입을 베어 물고 바로 토한다. 다음 날 좀 더 멀리 움직여 보름달을 사다 주었더니 신기하게 먹는다. 요구르트도 딱 하나 에이스만 먹었다. 나는 퇴근 후 매일 이것들을 찾아 헤매야 했다. 이렇게 엄마, 아빠가 되었는데 아이들 생각은 우리와 참 많이 다르다.
<어쩌다 내가 아빠가 돼서>는 사실 요즘 아빠라는 임무에 지쳐있는 내 눈을 확 잡아끌었다. 나와 비슷한 심리를 가진 아빠가 있구나 하는 공감대가 느껴져 반갑기도 하고 해서 단숨에(워낙 몰입도도 좋은 책이긴 하지만) 읽었다. 헌데 읽고나니사실 이 책은 지친 아빠의 이야기가 아니라 위기의 가족을 위한 해법 같은 이야기다. 다만 아빠가 중심에 있을 뿐. 아빠로서의 힘들다고 투정하는 불평 불만이나 좋은 아빠되기, 아이들과 잘지내는 방법 등의 해법을 생각했는데 아니다.읽으면서 그런 쉬운 해법이 아닌 부끄럽고 마음을 다잡고 뉘우치게 만들고 있다. 기분 나쁘게.
12편의책과 12편의 영화를 희노애락이라는 인생의 감정들에 녹여아빠 혹은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낸 저자의 날카롭고 고개가 주억거리는 통찰력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찌된 일인지 나름 독서와 영화를 많이 본다고 생각했는데 읽은 책과 본 영화가 몇개 없다는게 희안할 정도다. 그정도로 가족이나 아빠 이야기에 내가 무관심했나 싶다. 사실 나는 아이들만 부모에게 상처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부모도 아이들에게 상처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지금 14살인 딸아이가 5살이었을 때의 일은 내게 아직도 선명하게 서운함으로 남아있다. 호기좋게 사업을 시작하게 1년만에 홀랑 말아먹고 재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바다 건너 제주도까지 떠밀려 내려가 강의를 하면서 2달 정도를 가족과 떨어져 지낸적이 있었는데 근 한 달만에 딸아이와 상봉하는 순간 나는 벌릴 수 있을 만큼 팔을 벌리고 찢을 수 있을 만큼 입을 찢어 웃는데 딸 아이는 무슨 나쁜 아저씨를 본 마냥 엄마의 다리 뒤로 숨어 버렸다. 그 순간에 느껴지는 서운함이란. 근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튼 이 책은 슈퍼맨이 될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하는 착한 아빠들에게 던지는 이야기이며, 아이들에게 그런 아빠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거기에 더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도 일깨워 주는 책이다. 별 백만스물한개를 준다. 앞으로 찾아 볼 것들에 대한 목록이 생겼다.
박규태 감독의 날아라 허동구 / 스티븐 돌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 / 이환경 감독의 7번방의 선물 /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 / 미리암 프레슬러의 씁쓸한 초콜릿 /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의 행복을 찾아서 / 김주영의 홍어 / 아멜리 노통브의 아버지 죽이기 /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전만배, 이세영 감독의 나는 아빠다 / 김훈의 칼의 노래 / 시게마츠 기요시의 십자가 / 김정현의 아버지/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 봉준호 감독의 괴물/ 조창인의 가시고기 / 오상훈 감독의 파 송송 계란 탁/ 로버트 벤턴 감독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 황동혁 감독의 마이 파더 / 이안 감독의 음식남녀 / 수잔 비에르 감독의 인 어 베러 월드 / 코맥 매카시의 로드
"아이들이 아빠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뭘까?
인정받는 것이다. 칭찬받는 것이다. 아빠로부터 진심 어린 격려를 받는 것이다.
야단맞고, 벌을 서며, 훈계받는 걸 원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안다.
아빠가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 흥분해서 마구 쏟아내는 말인지,
정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충고를 조심스레 끄집어내는 것인지를." -p101
"아이들은 부모의 복제품이 아니다. 부모의 못다 푼 한을 풀어주는 존재도,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존재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독립적인 한 인격체다. 지구라는 별을 밝힐 또 하나의 빛나는 별이다.
부모는 아이들이 자신의 날개로 창공을 날아오를 따까지 동지가 되어줄 뿐이다.
누구도 그 독립성을, 그 찬란한 발광이나 날개짓을 해치거나 막을 수 없다.
내 기준으로, 내 시각으로, 내 희망으로 아이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 p102
"가족이란 시간을 나누는 관계다. 시간이란 곧 생명이다.
시간을 나누는 것은 피를 나누는 것과 같다.
같이 먹고 마시고 잠을 자고 웃고 울고 떠들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고
그렇게 함께한 시간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
아빠란 무엇인가? 아빠란 어떤 존재인가?
가족들이 서로 충분한 시간을 나누고 아름다운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독려하며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아빠다.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아빠와 함께 나누는 시간과 추억이다.
인생의 시계는 모두 공평하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추억은 시간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 p278
글 : 두목
아빠는 더 이상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슈퍼맨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걷는 인생길의 한 동반자일 뿐이다.
이 책에는 스물네 명의 아빠가 등장한다. 가족 문제를 다룬 소설과 영화 속 아빠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요즘 세대의 아빠들이 경험하는 희로애락을 다채롭게 조명했다. 소설과 영화를 인생의 축소판으로 보는 저자는 이를 통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삶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여러 작품 속에 투영된 이 시대 아빠들의 고민과 애환, 걸어가야 할 길을 탐색해보고자 했다. 〈7번방의 선물〉, 〈로드〉, 〈괴물〉 등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와 문학작품 속 캐릭터를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만큼 이론으로 가득한 교육학 책이나 육아서보다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며 현실적인 공감과 조언을 얻을 수 있다.
프롤로그_ 슈퍼맨 같은 아빠, 친구 같은 아빠
喜. 아빠의 미소가 필요한 순간들
아이는 아빠가 믿는 만큼 자란다
아이큐 60의 물 반장이지만 세상에서 우리 아들이 최고야
_박규태 감독의 〈날아라 허동구〉
아이와 같은 꿈을 꾸는 아빠
권투 선수가 되기를 바라는 아빠와 발레리노를 꿈꾸는 아들의 갈등
_스티븐 돌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
사랑보다 더 좋은 유산은 없다
흉악범이 모인 교도소에서 바보 아빠가 벌이는 딸과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
_이환경 감독의 〈7번방의 선물〉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이야기를 들려줘라
입만 열면 모험담을 늘어놓는 허풍쟁이 아빠와 견딜 수 없도록 지겨운 아들
_팀 버턴 감독의 〈빅 피쉬〉
열등감과 자신감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자유를 꿈꾸는 뚱뚱한 소녀의 달콤 쌉싸름한 다이어트 일기
_미리암 프레슬러의 씁쓸한 초콜릿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지혜를 가르쳐라
사업에 실패하고 집에서 쫓겨난 아빠에게 남은 건 아들과 21달러 33센트뿐
_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의 〈행복을 찾아서〉
怒. 자녀를 분노하게 만드는 아빠들
아빠의 바람기는 아이에게 치명적 상처를 남긴다
아내와 자식을 뒤로한 채 밖으로만 떠도는 한량 아빠
_김주영의 홍어
자녀를 먼저 인정하는 아빠가 자녀에게 인정받는다
진정한 아빠를 찾아 혼자서 길을 나선 한 소년의 이야기
_아멜리 노통브의 아버지 죽이기
아빠의 자리를 비워두지 마라
있어야 할 때, 있어야 할 곳에 언제나 부재중인 남자
_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아빠
세상에는 두 종류의 아빠가 있다,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
_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아빠와 아이가 나누어야 할 진짜 대화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무관심한 아빠
_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딸 바보 아닌 아빠가 어디 있으랴
사람들이 악당이라 부르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아빠 이야기
_전만배, 이세영 감독의 〈나는 아빠다〉
哀. 때로는 아빠도 눈물을 흘린다
자녀들이 닮고 싶어 하는 아빠
백성과 자식을 한가슴에 품어 안았던 이순신 장군
_김훈의 칼의 노래
‘내 자식이 설마’라는 위험한 생각
왕따로 자살한 중학생 아들을 바라보는 아빠의 슬픈 눈동자
_시게마츠 기요시의 십자가
부모가 얼마나 힘든지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의 한없는 무게감과 중량감
_김정현의 아버지
세대 차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아빠와 자녀 사이에는 사상과 생각의 커다란 강이 놓여 있다
_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아이에게 최후의 버팀목이 돼라
지구에 종말이 와도 내 딸은 내가 지킨다
_봉준호 감독의 〈괴물〉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과 같다
아들을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다 쏟아내는 아빠의 사랑
_조창인의 가시고기
樂. 힘들어도 웃는다, 나는 아빠니까
자녀와 함께 고된 추억을 만들어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홉 살 아들과 함께 떠난 국토 종단 길
_오상훈 감독의 〈파 송송 계란 탁〉
경솔한 이혼은 무책임의 극치다
집 나간 아내를 대신해 엄마 노릇까지 하며 힘겹게 아들을 키우는 아빠
_로버트 벤턴 감독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돈 많고 잘난 아빠만 아빠인 건 아니다
해외 입양아인 아들과 사형수인 아빠의 22년 만의 만남
_황동혁 감독의 〈마이 파더〉
자녀를 위해 요리하는 멋진 아빠
세상없어도 일요일 만찬은 반드시 가족과 함께하는 아빠
_이안 감독의 〈음식남녀〉
아빠의 폭력은 아들에게 대물림된다
폭력 앞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비폭력으로 맞서는 아빠의 진정한 용기
_수잔 비에르 감독의 〈인 어 베러 월드〉
아이들의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씨 하나를 남겨줘라
대재앙으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지구 위를 걸어가는 아빠와 아들
_코맥 매카시의 로드
에필로그_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시간과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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